강한 여성 주인공의 새로운 바람이 불다

 

 

에그테일은 ‘벌쳐’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콘텐츠를 번역합니다

 

 

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Jen Chaney

 

 

이미지: BBC America,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동안 영화나 TV에서 ‘강한 여성 주인공’이라는 말은 종종 ‘마초적인 배경에서 여성이 남자다운 무언가를 하는 캐릭터’를 의미했다.

최근 강한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호평받은 영화와 TV 시리즈에는 [원더 우먼], [스타워즈] 시리즈,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왕좌의 게임], [웨스트월드], [디 아메리칸즈], [오펀 블랙], [아토믹 블론드], [굿 걸스] 등이 있다. 예로 든 이 작품에는 과거 ‘남자다운’ 장르에서 전유했던 ‘사격’, ‘라이트세이버 휘두르기’, ‘흠씬 두들겨 패기’와 같은 행동을 하고, 복합적이며 강한 회복력과 용맹함을 지닌 여성들이 등장한다. 영화와 TV에서 강하고 멋진 여성이 된다는 것은 남성이 통치하는 환경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TV 시리즈와 영화에서 친숙한 스토리에 보다 노골적으로 여성적인 표현을 더해 ‘강한 여성 주연 작품’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킬링 이브]나 [오션스8] 같은 작품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의상이나 값비싼 보석을 등장시키며 대놓고 ‘여성다움’을 강조한다. 심지어 남자들이 주인공인 비슷한 이야기에서 의상, 보석을 무기로 삼아 휘두르기도 한다.

 

이미지: BBC America

 

산드라 오가 M15 요원 ‘이브 폴라스트리’, 조디 코머가 무자비한 러시아 암살자 ‘빌라넬’로 나오는 BBC 아메리카 드라마 [킬링 이브]는 가장 적절한 예다. [킬링 이브]는 [제이슨 본] 시리즈 혹은 조금 더 무서운 분위기의 [세븐]과 [양들의 침묵]처럼 쫓고 쫓기는 스릴러의 정석 같은 작품이다. 예외라면, 쫓고 쫓기는 사람 모두 여성이다.

 

뻔뻔한 얼굴로 다른 사람을 음해하는 빌라넬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권모술수를 쓸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일 때 여성의 미용을 위한 아이템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그녀는 첫 에피소드에서 토스카나에 있는 목표물에 접근해 독이 발린 머리핀으로 그의 눈을 찌른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독이 든 향수로 목표물을 살해한다. 빌라넬은 앞선 임무에서 총이나 칼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더 예쁘고 악의 없는 방식을 택한다. 목표물인 남자는 빌라넬이 잠재적인 하룻밤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머리핀의 존재를 몰랐고, 설령 눈치챘더라도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희생자인 여성 역시 다가오는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녀의 커리어에 영감을 받아 향수를 만들었다는 빌라넬의 가짜 이야기에 사로잡힌 후 살해당한다. 빌라넬은 여성적인 용어와 여성의 권력을 환기시키는 단어를 써가며 목표물인 여성을 유혹한다.

 

그녀는 이브를 유혹하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빌라넬은 자신을 찾는 데 정신이 팔린 이브를 꾀어내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메모를 보내거나 암호화된 힌트를 남기지 않는다. 그녀는 이브에게서 훔친 여행 가방에 꼼꼼히 잘 싸맨 스웨터와 드레스를 넣고 자신이 쓰는 향수 한 통과 ‘미안, 자기(Sorry baby)’라고 쓴 메모를 남긴 뒤 다시 돌려준다. 이는 마치 이브가 스티치 픽스(Stitch Fix)나 세포라(Sephora)에게 스토킹 당하는 걸 보는듯한 기분이다. 이브는 겁에 질림과 동시에 본인이 받은 선물을 착용하고 싶은 욕구를 떨치지 못한다.

 

이미지: BBC America

 

두 사람은 빌라넬이 이브의 집을 침입하면서 처음 대면한다. 서로 마주 앉은 ‘부엌’은 전형적으로 여성의 공간으로 여기는 곳이다. 빌라넬이 말했듯이 그녀가 원하는 건 이브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거였는데, 보통 이런 행위는 자신의 배우자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장면에서 이브가 요리를 담당하는 남편 ‘니코’가 만든 음식을 데워 준비하는 행동을 통해 성 역할에 대한 기대를 노련하게 전복하는 시도를 한다. 두 사람은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까지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빌라넬은 잠시 후 보통 채소를 써는 데 주로 사용하는 부엌칼을 이브의 목에 들이민다. 두 사람 사이에 발현된 일말의 성적 끌림을 포함해 이 장면에 나오는 모든 요소는 여성 간의 상호작용을 공표하고 있다. 그들의 성별, 그리고 성적으로 고착화된 용어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 정도가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두 사람이 대화하는 방식을 완전히 좌우한다.

 

이 만남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이브가 처음에 빌라넬이 준 이브닝 가운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패션은 사실상 [킬링 이브]의 캐릭터로 볼 수 있으며, 의상 디자이너 ‘피비 드 가예’에 따르면 시리즈 크리에이터 ‘피비 월러-브릿지’가 의상에 정말 흥미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드라마가 여성의 방식으로 말하려 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조지 클루니의 역할을 여성들이 이어받은 하이스트 무비 [오션스8]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리즈는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우두머리 데비가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능력 있는 여성을 모으며 시작된다. 그들의 목적은 멧 갈라가 열리는 동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1억 5천만 달러 상당의 까르띠에 투생 목걸이를 훔치는 것이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오션스] 시리즈에서 ‘스타일’은 정말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에는 오직 여성에 의해 스타일이 정의된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그 외 무리가 입었던 턱시도는 케이트 블란쳇의 스틸레토 힐, 드레스, 스키니 진, 여성용 블레이저와 엣지 있는 타이로 대체된다. 강도의 배경 또한 한층 더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멧 갈라는 연줄이 든든한 업계 유명인사들이 참석하는데, 여성들은 정교하거나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드레스를 입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이런 이유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멧 갈라를 위해 조금 더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데비 오션과 그녀의 무리는 직관적으로 어떻게 하면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들고 멧 갈라를 멋있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짜릿한 스릴을 주는 여느 하이스트 무비와 마찬가지로 [오션스8] 역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과정을 통해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하지만 멧 갈라에 들어가는 그 자체만으로 그와 동등한 스릴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서브텍스트는 할리우드 외에 어디에서든 여성과 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종종 잊힌다는 사실을 은밀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강도 행위의 기쁨은 여성의 이름을 딴 보물을, 그것을 탐내는 여성들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들고 유유히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극대화될 거라는 걸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이 전면에서 싸우기 위한 아주 독특한 ‘무기’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무기’가 뭔지는 ‘왜 작전에 남성을 포함하지 않느냐’는 루의 질문에 대한 데비의 다음 대답에서 알 수 있다. “남자는 주목받고, 여자는 무시당하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우리가 기꺼이 무시당해주는 거야.”

 

[킬링 이브]와 [오션스8]은 여성적 감각이 넘쳐흐르는 내러티브의 가장 적절한 대중문화적 예시지만, 두 작품만 그런 게 아니다. 돈세탁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TBS 방송국 [클라우스(Claws)]의 주인공들은 네일 살롱을 범죄 조직 내에서 역할을 숨기기 위해 이용한다.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의 시녀들은 인생과 육체의 많은 부분을 박탈당했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손실은 바로 개성, 품위, 재주로 그들을 ‘치장하는’ 능력이다. 1980년대 뉴욕의 무도회장 문화를 배경으로 한 FX 방송국 [포즈(Pose)]의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경쟁적인 본성과 진정한 자아를 발현하기 위해 패션을 이용한다. 그들은 이판사판 무도회 경쟁을 위해 자신에게 독특한 이름을 붙이는데, 무도회장에는 동료들과 심사위원들의 따끔한 눈초리가 늘 존재한다. 이 보깅 댄스 마스터들이 좀 더 드라마틱한 맥락에서 여성성을 주장하며 겪는 일과 모든 여성들이 매일 겪는 문제에는 한 가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외모에 대한 무자비한 평가’다.

 

이미지: AMC

 

‘가부장제 실각’ 정신이 엿보이는 AMC 방송국 신작 [다이어트랜드(Dietland)]는 가학적인 남성에게 응징하는 마스크를 쓴 페미니스트 자경단 그룹 ‘제니퍼’에 대한 암시를 비중 있게 다룬다. 첫 두 화에 나온 제니퍼 그룹의 행동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일당이 은행을 터는 오프닝 시퀀스를 연상시킨다. 이것은 다시 한번, 주로 남성들에게 결부되던 시각언어를 여성이 주체가 되어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나머지 전개는 주인공인 플럼 케틀이 일하는 곳이자 매우 여성적인 환경인 10대 패션&뷰티 매거진 ‘데이지 체인’ 사무실에서 이어진다. [다이어트랜드]는 ‘데이지 체인’을 포함해 소녀들에게 외관을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동종업계의 기풍에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패션, 메이크업, 다른 심미적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은 어리석고 지적이지 않다’는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이어트랜드]의 파일럿 에피소드에는 [섹스 앤 더 시티], [어글리 베티], [더 볼드 타입]에서 매력적인 공간으로 나올 법한 환상적인 제품으로 가득 채운 미용 벽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과 달리 그런 공간이 지하에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벽장의 주인 ‘줄리아’는 데이지 체인을 소유한 오스틴 미디어 같은 출판 회사에 대해 “오스틴 미디어는 잡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주입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돈을 지불하게 만들죠. 하지만 우린 손상된 부분을 절대 고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동시에 그 ‘손상’을 고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플럼이 ‘예쁜 걸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하자 줄리아는 플럼의 얼굴에 립스틱과 블러셔를 바르며 “사람들이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안 하던가요?”라며 달콤하게 속삭인다. 이런 말을 화장품을 바르며 하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직 여성만이 이런 복잡한 메시지를 듣는 게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많은 여성들은 본연의 순수한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동시에 피부에 느껴지는 화장품의 촉감을 즐기기 때문이다. [킬링 이브]의 빌라넬처럼, 줄리아는 상대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킬링 이브]는 스파이 스릴러를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다뤘고, [오션스8]은 남자만 나오는 범죄 영화의 여성 버전이며, [다이어트랜드]는 가볍고 스타일리시한 ‘칙 릿’을 TV로 옮겨 페미니스트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좀 더 어두운 톤을 가미한 작품이다. 현대의 다른 TV 시리즈도 전통적인 여성 장르를 비슷한 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텔레노벨라 장르의 [제인 더 버진]이 대표적인 예다. 이 이야기들은 각자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남성성의 상징만큼이나 여성적 기표 역시 중요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원더 우먼]이나 [웨스트월드]의 ‘강한 여성 캐릭터’와 함께 [킬링 이브], [오션스8], [다이어트랜드]의 캐릭터 역시 ‘가공할 만한 여성’을 가치 있게 표현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다이어트랜드]의 줄리아는 플럼에게 “당신은 여자예요. 당신을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게 하는 방식으로 본인을 꾸미세요.”라고 말한다. 점점 더,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와 같은 ‘여성이 하는 것’에 대한 TV 쇼와 영화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Killing Eve, Ocean’s 8, and the New Femininity of ‘Strong Female Protagonists’

© 2018 All rights reserved. Distributed by Tribune Content Agency

 

저작권자 ©테일러콘텐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