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의 판도를 바꾼 ‘다이 하드’

날짜: 7월 16, 2018 에디터: Jacinta

에그테일은 ‘벌쳐’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콘텐츠를 번역합니다

 

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제이슨 베일리

 

이미지: 20세기 폭스

 

“윌리스가 500만 달러를 받으면, 레드포드는 얼마나 받는 걸까?” 이 문구는 1988년 2월 16일 뉴욕 타임즈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브루스 윌리스가 20세기 폭스의 새 액션 영화 [다이 하드]에 출연하며 받은 금액에 대한 혼란과 충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설적인 엔터테인먼트 변호사 버트 필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고객이 브루스 윌리스가 받은 금액의 1.5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고객 중 한 명이 어떤 배우가 그전에 받았던 금액의 100만 달러 이상을 더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영화사들은 내 고객에게 더 많은 금액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고액 출연료에 대한 기사는 엔터테인먼트 언론에서는 다소 신뢰성 있는 정보에 속한다. 영화사 중역과 에이전트는 급격히 높아지는 스타들의 몸값을 맞추는데 걱정이 크다. 예를 들어, 말론 브란도는 [슈퍼맨]을 찍을 때 500만 달러를 받았고, 더스틴 호프만은 [투씨] 출연료로 550만 달러를 받았다. 또한 엄청난 몸값 상승의 대표주자인 짐 캐리는 [케이블 가이]에서 2,000만 달러를 받았고, 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 속편 두 영화로 3,000만 달러를 받았다. 1988년 여름 당시 윌리스의 출연료가 가장 높았던 것은 아니다. 타임즈 기사에도 나와있듯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이 [람보 3]에 출연하며 받은 돈은 1,200만 달러에 달한다.

 

[다이 하드] 출연료 기사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TV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의 몸값이 500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에는 TV 배우와 영화배우에 대한 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셀리 롱, 돈 존슨, 빌 코스비와 같은 TV 스타들이 변화를 시도하다 몰락한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ABC 방송국의 [블루문 특급]의 주연을 맡고 망작 취급을 받는 영화 두 편에 연속으로 출연한 브루스 윌리스는 성공할 수 있었던 걸까? 더군다나 그는 TV에서 주로 코믹한 역할을 맡는 배우였다. 그는 무슨 이유로 스탤론처럼 언더셔츠 차림에 기관총을 들고 뛰어다니기로 한 걸까?

 

그에게는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윌리스는 비디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배우가 액션 영화에 출연해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으면, 다른 장르의 영화를 모두 섭렵한 뒤 다시 액션 영화에 복귀하기 수월해진다. 왜냐하면 대중이 이미 그를 액션 장르의 영웅적인 존재로 각인하기 때문이다.” [다이 하드]는 그에게 정말이지 딱 어울리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 역할이 그에게 바로 갔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폭스의 회장 레너드 골드버그는 타임즈에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메이저 영화가 있어서 브루스 윌리스에게 연락을 취했다.”라고 말했다. 그 기사에는 영화사가 영화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으며 리차드 기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영화의 각본을 거절했다고 나와있다. 몇 년 뒤 불거진 루머에 따르면 버트 레이놀즈, 돈 존슨, 해리슨 포드,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역시 각본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미지: United Artists

 

프랭크 시나트라 역시 이 역할 제의를 고사했다. [다이 하드]는 로데릭 소프가 1979년에 집필한 소설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전작인 [형사]는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영화로 개봉했는데, 그는 극중 전직 경찰 조 리랜드 역할을 맡았다. 시나트라의 원래 계약 조건은 영화사가 [다이 하드]를 만들 때 그에게 가장 먼저 주연 자리를 제안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시나트라는 이 역할을 거절했다. (70년대 당시 그의 별명이 ‘회장님’이었던 걸 감안하면 여러 영화감독에게는 ‘구원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각본가 젭 스튜어트와 스티븐 E. 드 수자는 리랜드를 좀 더 젊고 활동적인 형사 ‘존 맥클레인’으로 고쳐 썼다. 1편은 존이 아내 홀리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갔다가 (참고로 책에서는 딸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나온다) 빌딩을 습격한 테러리스트를 막아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작자 로렌스 고든과 조엘 실버는 [프레데터]에서 함께 작업한 존 맥티어넌을 감독으로 발탁했다.

 

맥티어넌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연출을 맡을 당시 원작 속 진지한 정치적 고찰에 빠져 있는 한스 그루버 캐릭터를 오로지 강도 사건에 집중하도록 변화를 주어 작품의 분위기를 좀 더 가볍고 재밌게 만드는 걸 고집했다고 밝혔다. “’바더-마인호프 갱 타입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정치적 싸움에 지쳐 극악한 강도 사건을 저지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 영화의 본 촬영은 1987년 11월 2일에 시작됐고, 1988년 여름 개봉 고작 네 달 전인 3월에 촬영이 끝났다. 촬영 당시 영화사가 소유하고 있던 폭스 플라자를 나카토미 플라자의 촬영지로 사용했으며 센츄리 시티에 위치한 ‘스테이지 15(Stage 15)’에서 동시에 촬영이 진행됐다.

 

폭스는 영화의 개봉일이 다가오자 500만 달러의 출연료가 과연 가치 있는 투자였는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는 ‘여름 개봉작 미리 보기’ 코너에서 ‘윌리스가 영화를 이끌만한 재목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다이 하드]의 경쟁작이었던 스탤론의 [람보 3], 슈왈제네거의 [레드 히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5 – 추적자]가 흥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타임즈는 심지어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영화가 너무 안이하다’며 ‘관객들은 윌리스가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관심 없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윅의 데이빗 안센은 ‘윌리스는 500만 달러를 받은 배우 중 가장 인기 없는 배우’라며 직설적으로 독설을 퍼부었다) 폭스 마케팅 부서는 막대한 손해를 막기 위한 일환으로 광고와 포스터 중앙에 윌리스 대신 폭발하는 빌딩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미리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윌리스의 비중을 대폭 줄였다.

 

참 다행스럽게도 [다이 하드]를 본 관객들은 영화를 마음에 들어했다. 시사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와이드 개봉 전에 700만 달러의 성과를 내며 박스오피스 3위에 안착했다. 그 후 10주간 박스오피스 TOP 5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다가 10월이 되어서야 6위로 내려갔다. 타임즈는 ‘여름 개봉작 총정리’라는 기사에서 ‘[다이 하드]의 성공은 액션 장르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기술했다. 또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람보 3]는 ‘엄청나게 실망스러운 작품’이라 논평했고, 슈왈제네거와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다이 하드]는 북미에서 8,300만 달러, 북미 제외 5,700만 달러의 성적을 내며 윌리스의 출연료뿐 아니라 제작비까지 모두 회수했고 홈비디오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재미를 보았다. 2년 뒤 개봉한 속편은 전작의 성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영화가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개봉 2주 후, 타임즈의 빈센트 캔비는 그의 기사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다이 하드]는 어린이만을 혹은 어른들만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 전자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군상을 가리키는 ‘키덜트’를 위한 작품이다. 이 키덜트 집단에는 8살, 18살, 80살인 사람 모두 속할 수 있다.” 캔비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다이 하드]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도 [죠스]나 [스타 워즈] 같은 이벤트 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도 아니다. 혹은 [탑건]처럼 액션 비중이 적은 액션 영화도 아니다.

 

관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스릴’이라는 오직 한 가지 요소 때문에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아니다. 물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엄청난 총격전을 포함한 액션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매우 촘촘히 짜여 있고, 소방 호스로 건물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대표적으로 보았듯 전체적인 구성이 정말 훌륭하며, 80년대에 나온 전형적이고 기계적인 인물보다 좀 더 인간적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주인공이 나온다. 바로 이 부분에서 윌리스의 진가가 드러난다. 제작자 래리 고든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어떤 일을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했고, 브루스는 다른 스타들보다 이런 ‘보통 사람’의 면모를 훨씬 잘 끌어냈다.”라고 말했다.

 

이미지: 20세기 폭스

 

윌리스의 거칠고, 전형적인 뉴저지 남성의 페르소나 때문에 캐릭터가 산 것은 아니다. [다이 하드]는 존 맥클레인이 관객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본능적인 경험을 제대로 선사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즉흥적인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까’라고 자문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부분에서 스튜어트와 드 수자의 각본의 기발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의 조 리랜드는 국제 테러 행위가 전문인 보안 전문가로, 그의 행동은 주로 본인의 지식, 연구, 현장 경험에 기반한다(심지어 그는 그루버의 뒷배경과 어린 시절까지 숙지하고 있다). 반면 존 맥클레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육감으로 모든 행동을 하는 길거리 경찰이다.

 

이미지: 20세기 폭스

 

윌리스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기존 영화와는 거리가 먼 취약성을 전달한다. 영화에서 맥클레인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장면 중 하나는 그루버의 부하가 깨트린 유리에 발을 다치는 장면인데, 이때 입은 상처로 그는 밤새 괴로워한다. 맥클레인이 화장실 세면대에 앉아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뽑는 장면은 [람보] 같은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멋진 ‘자가 수술’ 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지만, 제작진은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또 다른 계략을 세운 셈이다.

 

윌리스는 그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지 전부 알고 있었고, 그런 점은 영화 개봉 전 뉴욕 포스트의 프랭크 로비스와 진행한 다음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제작진과 함께 존 맥클레인을 취약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정말 많은 시간을 썼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슈퍼히어로도, 람보도 아니다. 맥클레인은 피곤함, 고통, 두려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나중에 나온 속편이 형편없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다이 하드 4.0]에서 맥클레인이 혼자 제트기를 떨어트렸을 때, 그는 그저 흔해 빠진 액션 영화의 영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이 하드]는 액션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소나 교통수단만 달라진 ‘다이 하드 영화’의 초석을 깔았다. 그런 영화들의 예를 들어보자면 일단 [다이 하드] 속편(공항), [스피드] (버스), [언더 시즈] (군함), [언더 시즈 2] (기차), [패신저 57] (비행기), 그리고 지난주 개봉한 [스카이스크래퍼]는 [다이 하드]와 마찬가지로 빌딩에서의 사투를 그린다. 한 시대의 시작은 다른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윌리스가 홍보 활동에서 람보를 언급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벼락 스타 윌리스가 88년 여름 당시 스탤론과 슈왈제네거의 영화를 가뿐히 제쳤을 때, ‘액션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의 시대’가 끝났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레이건 시대의 영웅이었고, 한때 높은 이상을 품고 있다 욕심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다이 하드]의 한스 그루버는 의심할 나위 없이 레이건 시대의 악당이었다.

 

뉴욕 타임즈의 아담 스턴버그는 기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확실성, 대담무쌍함, 확고한 신념을 상징했던 과거의 영웅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들의 입지 또한 무너졌다. 아직까지 그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인간상은 두려움, 실망, 불안함,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비논리적인 희망을 전달하는 캐릭터다. 날로 초조해지는 세상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가끔은 모든 것을 실로 엉성하게 연결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이런 기분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아마도 1980년대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틀리지 않고, 파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입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뜬구름 잡는 헛소리들이 난무했고, 국민 대부분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시기를 겪은 이후 우리는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How Die Hard Changed the Action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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