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에단 호크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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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아브라함 라이즈먼

 

이미지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에단 호크는 현재의 할리우드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장르인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일련의 주제를 얘기하기 위해 ‘필름 스테이지’와 인터뷰하는 자리를 가졌다. 간단히 말해 그는 이 장르의 팬이 아니며, 제임스 맨골드가 연출한 ‘엑스맨’ 스핀오프 영화 [로건]이 칭찬받는 것을 특히나 못마땅해한다. 다음은 그가 인터뷰 중 한 말이다.

 

“사람들이 [로건]이 대단히 훌륭한 영화라고 부르는 것에 문제가 있다. 뭐, ‘슈퍼히어로’ 영화 치고는 훌륭한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여전히 손에서 금속이 나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로베르 브레송과 같은 거장이 연출한 영화가 아니다. 주위의 지인들이 [로건]이 좋다고 해서 보러 갔지만, 보고 난 다음의 내 반응은 ‘뭐라고? 에이, 이건 그냥 훌륭한 슈퍼히어로 영화잖아’였다. ‘훌륭한 영화’와 ‘훌륭한 슈퍼히어로 영화’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는데, 업계의 거물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에 관객들이 슈퍼히어로 영화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고백하자면, 난 이전에도 기사로 작성했을 만큼 [로건]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스크리닝 당시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을 쏟기도 했고, 20년 동안 지속 중인 슈퍼히어로 부흥기에 본 영화들 중 최상위권에 드는 작품이었다. 맨골드 감독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로건]이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게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갖는지에 관해 기사도 썼다. 지인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이 영화를 정말 수없이 추천했다.

 

하지만 5년간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 전문적으로 글을 쓰고, 20년간 이 장르를 파고 난 지금 시점에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사실 이제 더 이상 스판덱스와 관련된 영화에 이전만큼 흥분되지 않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볼 때는 흡사 ‘루도비코 요법’을 받는 기분이었고, 영화를 다 본 후에는 빈속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호크의 분노에 찬 의견에 어느 정도 사전 준비가 된 셈이다. ‘슈퍼히어로 영화 과잉’은 점점 심각해져서 누군가 이 장르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면 자동적으로 ‘아, 그게 맞을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안에는 앞으로 더 나은 영화가 나올 거라는 희망이 있다. 에단 호크와 내가 상영관에서 나오며 ‘나같이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도 충족할 만한 초능력 영화가 나왔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 말이다. 우린 더 나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만들어야만 한다.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나보다 똑똑한 이들은 현재 이 장르를 후퇴시키는 주요 요인들을 이미 지적하고 있다.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가 일정 기준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시장 기반의 원인’에 대해 궁금한 점은 나의 동료 맷 졸러 세이츠가 2014년 형편없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개봉 당시 쓴 에세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것을 충돌시키는 것: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이 에세이는 이렇게 말한다.

 

“제작사, 제작자, 작가, 감독 모두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기대보다 조금 나은’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관객들은 더 나은 영화에는 거의 관심이 없으며, 훌륭한 영화는 더욱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괜찮은’ 혹은 ‘괜찮은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만 원한다. 영화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쁘거나 사적인 부분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들은 만족한다. 제작사 및 업계 사람들의 목표는 재정적인 리스크를 줄이는 것과 관객들이 신작 마블 영화를 보고 ‘기대에 한참 못 미치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할리우드는 (‘로건’이 흉내 내길 원했던 장르) 서부 영화 역시 대량으로 찍어냈지만, 이들은 ‘적어도 지금은’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대표적인 예로 [수색자], [무법자 조시 웨일즈], [하이 눈], [셰인]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서부 장르는 다양한 이유로 슈퍼히어로 영화보다는 혁신의 가능성이 조금 더 많았다. 존 히스는 에세이에 세이츠의 글에 대해 다음처럼 유려히 기술했다.

 

“서부 영화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슈퍼히어로 영화보다 위험성이 적었다. 또한 서부 영화는 배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같은 캐릭터를 갖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서부 영화는 작품의 성공에 캐릭터보다 배우의 힘이 더 크게 작용했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는 반대의 양상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음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잠시 숨을 고르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자. 앞에서 말한 것은 모두 상업적인 고려 사항일 뿐, 본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작사 및 관객의 입장같이 여러 요인을 예로 들어가며 말하려는 게 결국 ‘슈퍼히어로 영화의 스토리는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라는 것일까? 적어도 난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여태 나온 슈퍼히어로 코믹스 중에는 훌륭한 예술 수준으로 도약한 스토리의 작품이 많다. 그저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올해는 진정한 첫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액션 코믹스 1호’에 데뷔한 지 80주년을 맞은 해다. 글로벌 문화에 코믹스라는 것이 등장한 뒤, 뛰어난 솜씨의 많은 창작자와 창작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느 훌륭한 픽션 장르의 작품만큼이나 풍성한 내용의 슈퍼히어로 서사를 만들어 왔다. 작가이자 아티스트 잭 커비가 6~70년대에 쏟아낸 전례 없는 작품이나 80년대의 원대한 해체 이론적 성과를 낸 ‘왓치맨’, 커트 뷰식과 브렌트 앤더슨의 기발함에서 탄생한 ‘아스트로 시티’는 현재까지 계속 나오고 있고, 그랜트 모리슨의 ‘배트맨’은 길게 말할 것도 없으며,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영 어덜트 천재물 ‘미스 마블’까지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앞서 언급한 스토리의 공통점은 ‘뛰어난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슈퍼히어로물의 기초적인 질문을 작품 내에서 끌어내는 역량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어떻게든 자신을 특별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능력이나 장점 하나씩은 있고, 그걸 사용하는 방법 혹은 오용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는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다소 과시적인 요소에는 연속극 형식의 스토리텔링, 세계를 파괴할만한 위협, 대체 유니버스, 비현실적인 과학 기술, 비주얼적으로 흥미로운 힘, 자기 지시적인 농담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힘의 곤경’이라는 요소가 부재하면 소용 없어진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종종 ‘힘’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보여주기식 전개’에 휘말린다. 이러한 장르의 영화에서 대의를 위해 그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혼란스러워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위대한 힘에는 엄청난 책임감이 따른다’는 식의 대사를 간단히 말하며, 결국 정신을 차린다는 전개를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비주얼을 조금 다르게 하거나 (‘닥터 스트레인지’는 훌륭한 비주얼을 선사하기는 했다) 시사적인 농담을 던지면서 (‘토르: 라그나로크’는 전편처럼 엄청난 악에 맞서 싸운다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꽤나 재밌다) 단조로움을 피할 수는 있지만, 장르의 핵심적인 서사를 혁신적인 전개로 펼치는 작품은 거의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늘 똑같기는 해도 굉장히 재밌으며 잘 만든 영화를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어벤져스’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라든가) 그 이상의 작품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미지: Buena Vista Pictures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훌륭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언브레이커블]은 잠재적으로 강력한 미국 중산층의 자기 회의에 대한 성찰을 잘 담은 작품이다. [블랙 팬서]는 유토피아 사회와 유색인종이 가진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그렸고, 에단 호크가 그렇게 못마땅해했던 [로건]도 앞서 말했듯 대단히 훌륭한 영화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폭력적인 남자가 아이가 저지르면 안 되는 죄를 떠맡기 위해 본인의 힘을 사용해 끔찍한 일을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과연 그가 그리스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세 작품 모두 세이츠와 히스의 에세이에 나온 내용으로 지적받을 사항은 있지만. (‘언브레이커블’은 충격을 수월히 주기 위해 전혀 불필요한 연쇄 살인마를 집어넣었고, ‘블랙 팬서’는 정형화된 후반부가 극의 흐름을 깼으며, ‘로건’은 과거에 수없이 나온 ‘엑스맨’ 영화를 봐야만 진정으로 이입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위대한’ 영화에 한 발짝 접근하며 우리에게 낙관적인 생각을 가능케 했다.

 

언젠가, 바라건대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영화감독이나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에 나온 적이 없던 방식으로 힘을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말은 이전에 나온 잘 빠진 코믹스에 나온 요소를 가져다 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 제작을 불리하게 만든 상업적인 고려 사항이 어떤 게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그것들을 가능한 한 무시하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실험적인 작품이 조만간, 그것도 일제히 나오리라는 희망을 크게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가 에단 호크가 말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야망 없는’ 종말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길 바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수치심을 유발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로건이 슈퍼히어로 영화의 끝을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초석의 역할을 했는지’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Ethan Hawke Is Right About Superhero Movies —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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