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알로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 필모 길라잡이

 

에그테일은 ‘벌쳐’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콘텐츠를 번역합니다

 

 

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찰스 브라메스코

 

 

이미지: Produzioni Atlas Consorziate

 

‘지알로’로 알려진 이탈리아 영화 하위 장르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을뿐더러 대부분의 작품은 미국 극장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슬래셔 장르와 사랑에 빠진 정통한 감독들은 현재까지 그 맥을 꾸준히 잇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일라이 로스처럼 모험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피터 스트릭랜드, 헬렌 카테 & 브루노 브루자니 부부처럼 인간 저변에 깔린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들 모두 논리나 현실성과 같은 사소한 요소보다 포르노에 가까운 시각적 화려함을 더 중요시하며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다. 앞으로 이 장르의 가장 최신작은 발레 학교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룬 [서스페리아]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실 [서스페리아]는 정통 지알로 장르는 아니지만,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뉴욕 메트로그래프 극장은 이 작품을 포함한 지알로 영화 12편을 상영하는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아르젠토는 지알로 양식을 집대성하고, 정교하며 확고한 상징적인 비유법을 완벽하게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다소 뒤섞인 듯한 줄거리, 심리적 황홀경을 유발하는 다채로운 색상, 모든 작품을 아우르며 위험과 욕망을 상징하는 검은 가죽 장갑 같은 특징이 있다. 아르젠토의 영화를 ‘주제적 관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성과 죽음’ 일 것이며, 그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 ‘강박’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누군가는 ‘영화의 내용보다 거의 스타일에만 치중한 감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따지자면 그 스타일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내용이자 본질이 된 셈이다.

 

새로운 [서스페리아]의 개봉과 메트로그래프 회고전은 아르젠토의 위상을 다시 알릴 것이기 때문에 권위적인 눈으로 소위 ‘아는 체하고 싶은 사람’들은 11월이 오기 전에 벼락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목적에 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벌쳐’ 역시 아르젠토의 훌륭한 작품에 관한 다소 피상적인 개요를 엮어왔다. 그의 연출법에 매혹된 사람들은 아르젠토와 함께 호러 거장이라 불리는 ‘세르지오 마티노’,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의 필모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동물 3부작 (1970-1971)

 

이미지: Titanus

 

세르지오 레오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옛날옛적 서부에서] 각본 실력을 인정받은 인정받은 아르젠토는 아무 단어나 막 휘갈긴 것 같은 제목의 세 작품으로 영화감독에 입문했다. 먼저 3부작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수정 깃털의 새]를 기점으로 1971년에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Cat o’ Nine Tails)]와 [포 플라이즈 온 그레이 벨벳(Four Flies on Grey Velvet)]을 동시에 만들며 시리즈를 완성했다. 세 작품 모두 창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휴가를 떠난 미국 소설가, 풍자적인 기자, 로큰롤 드럼 연주자) 살인을 목격한 뒤 누명을 벗거나 화를 면하기 위해 독립적인 수사를 벌인다는 전개로 진행된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감미로운 라운지 음악과 함께 시체가 여기저기 불쑥 튀어나오고, 나중에는 결국 유혈로 가득한 살인자의 정체가 밝혀진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라는 제목에서 ‘아홉 개’는 아마추어 형사의 추리 방향을 은유할 만큼 구성이 꽤나 반복적이지만, 이 반복성은 아르젠토가 살짝 뒤틀린 영화적 구조를 쌓아 올리기 위한 ‘비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눈 주위의 클로즈업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관음증과 노출증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는 ‘독일 아이’ 가면이 짓고 있는 차가운 미소는 [포 플라이즈 온 그레이 벨벳]을 보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니고, 1인칭 표현주의적 시점은 살인자의 시선을 조명한다. (참고로 아르젠토는 그의 영화에서 1인칭 시점으로 누군가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을 찍을 때 그의 손을 직접 쓰길 고집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는 [수정 깃털의 새]의 절정 부분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거대한 금속 조각상 아래에 그의 ‘먹이’를 가둬 놓는다는 독특한 연출로 ‘도망치는 살인마’라는 평범한 요소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미학에는 역시 고통이 수반되는 법이다.

 

 

 

딥 레드(Deep Red, 1975)

 

이미지: Blue Underground

 

아르젠토는 1973년에 만든 엉뚱한 정치 영화 [더 파이브 데이즈] 이후 ‘지알로’ 작품으로 회귀했을 당시, 이미 있는 것을 다시 만드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아르젠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이미 정립한 변수에서 과감히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것과 동시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기교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피와 사뭇 다른 핏빛을 화면에 가득 채워 넣으며 제목이 암시하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살인의 광기가 담긴 아리아가 울리는 순간에 카메라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벽을 따라 끊임없이 달리는데, 이전에 아르젠토의 카메라가 이처럼 자유로이 움직인 적은 없다. 프로이트적인 생각을 끌어내는 일련의 살인마 인형, 무엇인가 유발하는 듯한 음악 신호, 억눌린 트라우마 등 대중 심리학에 대한 아르젠토의 끊임없는 관심은 그의 가장 외설스러운 이 작품에 깔려 있다. (영화의 주연 데이빗 헤밍스가 약 10년 전 ‘욕망(1966)’에 출연하며 런던의 패션계에 불러일으킨 쿨한 에너지를 고려해 봤을 때, 그는 세련된 사교가와 비트족 이후 힙스터들로 가득한 아르젠토의 세상에 완벽히 어울리는 배우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음울하게 선회하는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든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고블린’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르젠토는 영화 음악을 만들어 줄 사람으로 ‘핑크 플로이드’를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이내 거절당했는데, 이게 뜻밖의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핑크 플로이드에게 퇴짜를 맞은 아르젠토는 이탈리아에 돌아가 재즈 피아니스트 조르지오 가슬리니를 만났고, 가슬리니는 그해 초 라이브 콘서트에서 본 야위고 뚱한 20대로 구성된 고블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가슬리니는 음악 작업을 하던 중 감독과의 논쟁으로 프로젝트에서 빠졌고, 이로 인해 고블린은 최소한의 감시 하에 스튜디오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고블린의 불안한 감성을 유발하는 프리재즈, 꾸준히 변주하는 색소폰 솔로, 길길이 날뛰는 신시사이저 소리는 존 카펜터의 [할로윈] 주제곡을 위한 토대로 만들었으며, 헤비메탈 광팬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같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 당신이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악몽에서나 흐를 법한 영화의 소름 끼치는 자장가 소리는 없애기 힘들 것이다.

 

 

 

서스페리아(Suspiria, 1977)

 

이미지: Produzioni Atlas Consorziate

 

학자들은 이 작품을 정통적인 지알로 장르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오랫동안 설전을 벌였는데, [서스페리아]는 멀쩡해 보이는 세상에서 초현실적인 순수 판타지 세계로 자연스레 옮겨간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류학에 별다른 관이심 없는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서스페리아]를 어떤 장르로 분류하든지 이 작품을 여타의 아르젠토 영화와 마찬가지로 ‘환각을 초래하는 동시에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지옥으로의 여행’으로 볼 것이다. 제시카 하퍼는 3년 전 찍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천국의 유령, 1974]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한 여자’ 역할을 맡았는데, 여기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엘리트 발레 학교에 유학 간 미국인 발레리나를 연기했다.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이 제법 등장한다. 천장에서 구더기가 떨어지는 장면, 주인공이 음식에 들어 있는 약을 발견하는 장면 등에서 그런 기미가 서서히 보이다가 선생님들이 정기적으로 육신의 희생을 요구하는 고대 의식에 홀린 마녀들이라는 게 밝혀지는 장면에서 그 비현실성이 명확해진다.

 

[서스페리아]는 아르젠토 작품 중 가장 호화로운 스케일을 자랑한다. 종교적인 애환에 대한 19세기의 주술 신화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에 의해 유명해진 어둡고, 폭력적인 동화를 최대치로 뒤섞은 것 같다. 그의 기준점들을 깊게 파고들면서 작품은 괴상한 분위기가 조성됐는데, 이는 정통적이지 않은 일련의 죽음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 하나 예로 들자면,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목을 조르는 장면이 대부분 없어진 대신에 무용수가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가시철사 더미에서 죽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무용수가 춤을 추는 장면은 극히 적지만 공연에서 드러나는 과열된 감정이 작품의 전체적인 뼈대를 형성하며, 이 감정은 여기저기 유리가 깨지며 잠재의식을 직접적으로 돌파하는 마지막 부분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강렬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경고하자면,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다시는 빛나는 공작 부적을 이전과 같이 볼 수 없을 것이다.

 

 

 

섀도우(Shadow, 1982)

 

이미지: Titanus

 

아르젠토는 [서스페리아], [인페르노]와 같은 신비주의 경향의 작품을 찍은 후 복수의 칼날을 갈고 지알로 장르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팬들에게 겁을 먹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자 정신 나간 스토커에게 쫓기는 소설가에 대한 영화를 연출했다. 극중 스토커는 소설가가 쓴 작품의 내용을 모방하여 살인을 저지른다. 아르젠토는 또한 작품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의 아바타 같은 주인공이 여성의 피부와 대학살에 대한 그의 열정을 반대하는 비평가들의 의견을 비판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대단원에는 범인의 범행을 다루며 감성적인 취향에 반대하는 아르젠토 본인을 유쾌하게 암시하는데, 이는 그의 메타-텍스트성을 좀 더 깊이 드러내는 부분이다. [섀도우]는 아르젠토의 성적 수치심과 일시적 분열을 드러낸 그의 가장 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젠토는 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소리치는 동시에 카메라 연출과 그만의 편집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획기적인 장면을 쉼 없이 만들었다. 그가 전달하는 시각 정보가 이처럼 복잡하고 정밀하게 전달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살인마의 정체를 밝힐만한 힌트를 결단력 있는 카메라워크와 몇몇 튀는 장면에 담아 서서히 드러냈다. 그는 일상의 물체를 적대적이고 생경하게 만들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이어 나갔는데, 부서진 전구 안에서 필라멘트가 불타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하지만 아르젠토의 비밀 무기는 언제나 평범한 것에 있다. 혼란으로 가득한 그의 유니버스에서 악은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무방비 상태인 낮이나 공공장소에 도사리고 있는 편이다. 그는 관객들이 빈방 같은 곳에 들어갈 때 ‘혹시 여기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을 먹길 바랐다.

 

 

 

헤드헌터(Trauma, 1993)

 

이미지: Republic Pictures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불발의 연속으로 아르젠토의 명성 훼손됐고, 그의 딸인 아시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중이라 이래저래 시끄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아르젠토는 정신병을 주제로 한 [헤드헌터]에 그의 딸을 주연으로 발탁했다. 아시아는 미니애폴리스 정신병원에 입원한 거식증 환자를 연기했는데, 이 병원은 그곳에서 일하는 잡역부들이 팬들 사이에서 ‘Noose-O-Matic’이라고 불리는 기괴한 기계에 목졸라 죽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영화의 원제 ‘트라우마(Trauma)’가 명백히 암시하듯 아르젠토는 또다시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파고들었고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정신 이상적인 배경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아시아가 맡은 역할은 그녀의 실제 이복자매인 ‘안나’에 기반을 두었는데, 안나는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 [헤드헌터]의 개봉 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아르젠토와 그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다리아 니콜로디의 신경증은 평소보다 훨씬 더 깊은 그들의 잠재의식까지 어두운 손길을 뻗어 그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여러 방면으로 이 작품을 아르젠토의 ‘일탈’ 격인 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정말 드물게도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여자 주인공이 살아 있고, 두 부녀의 질기고도 질긴 창의적 파트너십의 시초가 됐으며, 미국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아르젠토의 충동까지 살짝 드러났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는 (형편없는 영화를 포함한) 그 모든 작품이 오로지 다리오 아르젠토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그중 대다수는 누구라도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훌륭한 감독들은 시대, 장르, 국가에 상관없이 그들의 독특한 시각 언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아르젠토의 말뭉치에 대한 기능적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 앞에 그가 만든 영화의 장면을 내놓으면, 대부분은 그게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영화가 감히 손대지 못했던 몽상적이고 생생한 호러 장르에 대한 본인의 공헌을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컬트 문화, 예술 영화 상영관, 침실, 정신 병원, 혹은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사람이 있는 곳 등에서 길이 남아 있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A Beginner’s Guide to Dario Arg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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