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월드, NPC의 반란

날짜: 1월 6, 2017 에디터: 혜란

웨스트월드

 

※ NPC(Non-Player Character)란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Player)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Character)를 말한다.

 

HBO의 신작 <웨스트월드>는 SF스릴러이다. 배경은 서부시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두 컨셉은 “테마파크”라는 접점에서 만난다. 서부시대의 작은 마을은 다양한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테마파크의 일부다. 거액의 돈을 지불한 “손님들”은 마을로 들어와 다양한 체험을 한다. 하지만 그냥 문화체험 수준으로 끝난다면 비싼 돈을 주고 이 공간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 손님들은 자신들의 판타지 중 가장 폭력적인 것을 실현한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내가 죽였다!” 기뻐하며 기념촬영을 한다.

물론 이들이 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정교한 프로그래밍과 3D프린팅 기술이 만들어낸 너무나 사람같은 안드로이드. 손님들에게 이들은 NPC와 비슷한 존재다. 자신의 모험을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그래서 이들의 생각, 운명, 죽음 따위는 그들이 신경쓸 바가 아니다. 하지만 수만 번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다치고, 죽은 로봇들, 사람처럼 살아왔던 로봇들이 생각도 감정도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웨스트월드>는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아가씨, 돌로리스 애버나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상의 추한 모습 대신 아름다운 모습만 보겠다는 돌로리스의 하루는 잠에서 깨어난 후 현관 앞에서 평원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마을에 들러 볼일을 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과의 재회를 바라며, 아버지의 목장일을 돕고 여유가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하루는 이렇게 반복된다. 그 끝이 어떻든, 시작은 늘 항상 같다. 달리 말하면 게임의 시작은 같아도 그 끝은 다르다는 것. 그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기 침대에 누워 잠들 수도 있지만, 괴한들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걸 지켜보는 끔찍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바로 사라진다. 그리고 똑같은 날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돌로리스는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서 이상한 말을 듣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여행객의 아이가 건넨 “이 세계는 진짜가 아니다”라는 말, 아버지가 건넨 사진에 보이는 낯선 배경.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아버지가 건넨 비밀스러운 말 한 마디. 아픈 것은 아닌데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아버지. 돌로리스는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가 무엇인가 다르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테마파크 “웨스트월드”를 구현하는 “사람들” – 기술팀, 관리팀, 내러티브팀, 보안팀 등 – 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기술적인 오류를 잡고 완벽한 ‘경험 구현’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엇갈린다. 결국 내러티브를 담당하는 사이즈모어가 이벤트를 수정하면서 서부 마을에 대참사가 일어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고, 그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 돌로리스는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슬퍼한다. 결국 보안팀과 운영팀은 시신을 수습하고 슬픔에 겨운 돌로리스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를 데려간다.

안드로이드의 창조를 담당하는 버나드와 웨스트월드 테마파크의 창조자인 포드 박사는 일단 돌로리스의 아버지, 아니 아버지 역할을 한 안드로이드의 오류(…)를 점검한다. 포드 박사가 시험삼아 삽입한 ‘몽상 (reverie)’ 코드로 인해 안드로이드가 재프로그램되기 전의 기억을 끄집어낸 것… 이라고 보기엔 안드로이드의 진화가 심상치 않다. 자신을 창조하고 운영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 자신의 딸에게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안드로이드의 몸부림. 결국 그는 수많은 안드로이드를 저장한 창고로 돌아가고, 다른 안드로이드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보안팀 책임자 스텁스가 돌로리스를 만난다. 감정 없이 인지 모드로만 남겨진 돌로리스는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한다. 아버지가 건넨 사진에 대해 의심한 것 없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아름다움만 보려 한다, 생명을 해친 적도 없다, 그리고 지금 질문을 한 인간들에게 거짓을 말한 적도 없다. 돌로리스는 표정 하나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그게 당연하지만) 스텁스에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 “웨스트월드”의 가장 오래된 “호스트”, 돌로리스는 이렇게 다시 자신의 마을로 돌아긴다. 하지만 돌로리스가 맞는 새로운 아침은, 이전과 다르다. 과연 무엇일까?

제작 초기부터 사건(?)이 있던 시리즈였다. 거창한 시작에 필적하지 못하듯 방영 일정이 여러 번 재조정됐고, 3주간 촬영이 중단된 채 작가들이 극본을 다시 쓰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 탄생한 <웨스트월드>는 아마 ‘인공지능’에 관련된 드라마 중 상상력를 가장 극단으로 가져간 작품일 것이다. 물론 <매트릭스>가 있고, 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철저히 도구로 대하고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 그리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기계와 인간의 전쟁의 전초전를 보는 느낌이었다.

조나단 놀란은 전작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신이 되어버린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에도 눈과 귀가 있고, 수많은 정보를 분석해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래서 인간의 삶과 행동을 철저히 조종하는 기계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 인공지능은 다르다.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도구 취급을 받고 고통에 신음한다. 이들이 세상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은 고통을 받은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인간은 이를 실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실수가 가져올 파장이 클 것이라는 건 1편을 보고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원래 SF를 좋아하는 편이라 1편부터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세계를 단숨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고, 인간인 “손님”과 안드로이드 “호스트”가 어울려 사는 곳인 것도 알겠는데, 누가 호스트이고 누가 게스트인지 헷갈린다. 사실 그 구분 자체가 의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더불어 웨스트월드를 운영하는 각 운영팀의 서로 다른 생각과 갈등이 이 인공 세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이 세계를 “왜!” 만들었는지 등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명배우들이란 명배우는 다 나왔는데 연기는 안 보이고 작품만 보였다. 마치 퍼즐을 하나 선물받은 느낌. 한 번에 다 풀 수 없고 일주일에 하나씩 새로운 피스를 받아야 하는 퍼즐. 그래서 더 흥미롭고,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